조봉권의 문화 동행 <24> ‘트랜스 유라시아’의 문화론 [국제신문]
- transeurasiarally
- 2021년 12월 5일
- 4분 분량
대륙 횡단 기점이자 종점 … ‘환대의 도시’ 부산을 브랜딩하자

트랜스 유라시아 유재진(왼쪽) 공동조직위원장과 한미영 집행위원장이 ‘유라시아 원정대’에 관해 담소하면서 포즈를 취했다. 두 사람의 앞의 자동차는 유재진 위원장이 내년 5월 유라시아 원정대에 동참해 타고 갈 예정인 자동차와 동종 차량이다. 곽재훈 기자 kwakjh@kookje.co.kr
- 친환경차로 부산서 리스본까지
- 내년 5월부터 60일 2만㎞ 여정
- 비대면시대 의욕과 설렘 선사
- 세계인과 한류문화 나눌 기회
- 월드엑스포 유치 염원 알리고
- 남북 화해 기여할 길 열 수도
조선 시대에 살았던 우리 조상 대부분은 지평선을 평생 한 번도 못 보았다. 한반도는 언필칭 ‘산지가 70%’인 넓지 않은 땅이다. 고조선과 고구려 때 정도를 빼면,지평선의 상상력을 키울 기회는 우리에게 적었다.
1937년 한민족 약 17만 명에게 지평선은 비극이 돼 달려들었다. 일제강점기 한반도 북단 넘어 연해주에서 공동체를 이루고 살던 한민족 약 17만 명을 소련 스탈린은 정치·군사상 이유로 한반도에서 7000㎞ 떨어진 카자흐스탄 우슈또베를 비롯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켰다. 모두 죽음의 고통을 겪었고 많은 이가 희생됐다. 한 달에 걸친 고통스러운 이동 끝에 열차에서 내려 처음 본 지평선은 절망의 풍경이었다.
■ 고려인 후손들의 횡단 꿈
2007년 카자흐스탄 알마티에 한민족 해외동포를 취재 갔을 때 만난 고려인 빅또르 유가이(당시 45세) 씨를 잊을 수 없다. 그는 1993년 대모험을 단행했다. 고려인 청년 58명을 모아 자동차 18대에 나눠 타고 알마티에서 두만강까지 대륙을 횡단했다. 원래 북한 땅을 거쳐 서울까지 갈 계획이었으나 북한 당국이 막판에 입국을 거부해 눈물을 머금고 돌아섰다.
당시 그는 “(우리 고려인 후손이 중앙아시아에 살게 된 이유가) 한민족의 슬픈 운명 때문이었단 것을 알게 되면서 한반도를 그리워했다. 조상이 끌려온 길을 자동차로 되밟아 한국까지 가고 싶었다”고 한숨 쉬면서도 “2008년에 재도전에 나선다”고 담담하고 단단하게 말했다. 이 기사를 쓰기 위해 자료를 검색하다 영남일보 2018년 7월 26일 자에 박진관 기자가 쓴 빅또르 유가이 씨 인터뷰를 찾을 수 있었다. 그 기사에 따르면 유가이 씨는 재도전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2014년 8월 ‘후배’들에 의해 간절했던 그 꿈이 이뤄진다. 고려인 동포 30여 명으로 이뤄진 ‘고려인 이주 150주년 유라시아 자동차 대장정’ 일행이 2014년 7월 7일 러시아 모스크바를 출발해 북한 땅을 통과하고 판문점을 거쳐 한국에 들어오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들의 최종 목적지는 ‘부산’이었다. 8월 19일 고려인 대장정 일행과 한국의 환영단은 부산에 끝내 도착했다. 조민행 변호사가 2014년 8월 25일 ‘프레시안’에 기고한 참가기에서 전한 김 에르네스 단장의 말이 재미있고 담대했다. “모스크바에서 이곳까지 온 길에 비하면(이들은 1만5000㎞를 달려왔다) 서울~부산 거리는 옆집에 빵 사러 가는 것이지요?”
■ 희망·우호·교류의 루트로
이제,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할 때 필연으로 만나게 되는 지평선은 꿈과 도전의 상징으로 변했다. 예를 들면 이렇다. 2019년 10월부터 11월 말까지 조각가·행위예술가 성백 씨를 비롯한 이광혁 최형석 박현정 이정민 서수연 언덕 씨 등 부산의 청년예술가 7명은 부산문화재단의 후원을 받아 15년 된 버스를 타고 부산에서 출발해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쳐 독일 베를린까지 ‘아츠 버스(ARTs BUS) 월드 투어’를 하는 데 성공했다.
이 팀은 유라시아를 횡단하면서 닿는 곳마다 공연과 예술퍼포먼스를 펼치며 현지 예술가들과 교류했고, 국제신문은 7회에 걸쳐 성백 씨의 여행기를 연재했다. 여행기를 기획 연재하고, 늘어가는 대륙 횡단 사례를 되짚어보는 과정에서 우리는 ‘유라시아 대륙 횡단’에서 아주 큰 의미를 여러 가지 캐낼 수 있음을 깨달았다.
첫째, 유라시아 대륙 횡단은 ‘모두의 꿈을 담는 그릇’이다. 꿈꾸기조차 힘든 이 갇히고 닫힌 코로나 시대에 횡단의 꿈은 설렘을 준다. 참가인의 가슴이 ‘웅장’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초연결 시대의 각종 기기를 활용해 현장을 중계한다면 횡단에 동참하지 못한 사람도 기분 좋게 의욕이 샘솟고 꿈을 키울 수 있다. 둘째, 세계 곳곳의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고 한국(한류)을 나눌 수도 있다. 그리고 셋째, 유라시아 대륙 횡단의 기점이자 종점으로 ‘부산’을 세계인에게 알리면서, 열린 환대의 도시로 부산을 변화시킬 수 있는 천금 같은 계기를 만들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북한이 길을 연다면 세계 이목이 쏠리는 평화 상징으로 떠오를 수도 있다.

부산 중구 광복동에 있는 ‘7번 국도 시점’과 ‘2번 국도 종점’ 표지.
■ 인문 관점에서 보다
여기서 ‘인문 관점에서 본 유라시아 횡단’ ‘대륙 횡단의 문화론’을 떠올릴 수 있다. 승용차, SUV, 버스, 모터사이클 등 다양한 탈것을 택해 대륙 횡단에 나서는 한국인을 어렵잖게 접하는 상황에서, ‘유라시아 대륙 횡단’은 오늘, 여기, 이 땅, 우리 그리고 나에게 무엇을 줄 수 있고 어떤 의미가 될 수 있나? 유라시아 횡단은 문화적 주제이자 인문적 질문으로 떠오른다. 이런 흐름에서 ‘유라시아 원정대’ (트랜스 유라시아·Trans-Eurasia)는 최근 부산에서 발신된 소식 가운데 단연 눈길을 끈다. 부산이 세계를 향해 던지는 새롭고 참신한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지난 19일 부산 해운대구 스타자동차㈜ 유재진 회장이 집무하는 사무실로 찾아가 ㈔트랜스유라시아의 유재진 공동조직위원장, 한미영 집행위원장, 나호주 고문(부산관광공사 상임이사)을 만났다. 유라시아 원정대는 2022년 5월 27일 친환경 모빌리티(자동차)를 몰고 부산을 출발해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해 포르투갈 리스본까지 60일 일정으로 약 2만㎞를 달려가는(지구 둘레가 약 4만㎞다) 크고 담대한 행사다.
브랜드 전문가이기도 한 한미영 집행위원장에게 설명을 부탁했다. “2030 부산세계박람회(월드엑스포) 유치 홍보 활동을 펴는 것이 큰 비중을 차지할 것이다. 이를 위해 부산을 ‘브랜딩’하는 것이 필수불가결한데 부산의 가장 큰 문제는 도시브랜딩 부재다. 유라시아 원정대 활동을 통해 유라시아 대륙의 시작점으로서 부산을 브랜딩하는 데 집중할 것이다. MZ 세대(젊은 층인 2030세대) 참여를 독려해 이들이 에너지와 상상력을 키우고 세계와 소통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내년 행사는 코로나 영향 등으로 제한된 규모로 열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 원정대 이끄는 유재진 회장
유재진 공동조직위원장은 한국 최대 벤츠 자동차 딜러 기업인 스타자동차㈜를 이끄는 부산의 중진 기업인이다. 그는 “‘트랜스 유라시아’ 프로젝트에는 큰 의미가 여럿 있다고 본다. 유라시아 대륙에서 부산이 출발점이자 종점인 점을 세계에 각인하면서 월드엑스포 부산 유치 염원을 알리고 남북 화해에 기여할 길을 열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부산 경제계의 관심과 참여를 독려하는 역할도 맡았다”고 말했다. 유재진 회장은 내년 5월 출발할 유라시아 원정대의 선도 차량을 몰 예정이다.
취재를 마친 뒤 부산 중구 롯데백화점 광복점 앞으로 가보았다. 이곳에는 부산이라는 도시의 ‘운명’ 같은 특징을 보여주는 표지가 2개 서 있다. ‘2번 국도 종점 End’ 표지(옛시청솔향기쉼터)와 ‘7번 국도 시점 Begin’(롯데백화점 광복점 바로 앞)이다. 전남 신안군에서 달려온 377.9㎞ 길이의 2번 국도가 여기서 끝남과 동시에 함경북도 온성군 유덕면으로 이어지는 513.4㎞ 7번 국도가 시작되며, 7번 국도는 아시안 하이웨이 6호선(AH6)이다.
부산은 아시안 하이웨이의 출발점이다. 끝과 시작이 교차하는 기점이자 종점이며 유라시아를 횡단해 세계로 뻗고 세상을 받아들이는 환대의 도시, 부산 브랜드이다. 여기서 큰 도약이 시작할 수 있다. 국제신문은 2020년 11월 ‘유라시아의 관문, 부산의 가능성’ 포럼을 열었다.
선임기자 bgjo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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